불균형의 고통스러운 주택시장



불균형의 고통스러운 주택시장

왜 ? 한인주택시장만 왜 얼어붙었나.
요즘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골목마다 오픈하우스 간판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 금융위기 때, 숏세일이 넘쳐나던 그 시절에도 이 정도로 사인보드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바라보는 마음 한구석이 불안합니다. 오픈하우스하는 집은 많은데 바이어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요즈음 대략적으로 매물 5채가 나오면, 정상적인 시장에서 매매가 이루어지는 평균 기간인 3주 안에팔리는 것은 1채뿐입니다. 나머지 4채는 다음 사이클로 재고가 그대로 이전됩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누적된 인벤토리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공급이 많아 가격이 계속 조정되는 상황이 더 쌓이게 되고, 셀러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시점이 오면 가격이 급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행인 점은 1980년대 S&L 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처럼 금융기관 부실에서비롯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셀러들이 매물을 그냥 거둬들이는 방향으로 가는 조정 국면이면 큰 충격 없이 지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이런 침체 상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폭락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의 10~15% 하락에 추가 하락이 더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한인 에이전트들의 오픈하우스 팻말은 찾아보기 힘들고, 한인 소유 매물 역시 시장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전체 주택시장이 이토록 정체와 조정을 겪고 있음에도, 유독 한인 주택시장만 단단하게 얼어붙어 매물이 자취를 감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한인 커뮤니티만의 독특한 부동산 관점과 자산 운용 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한인커뮤니티 주택시장 규모
먼저 캘리포니아 전체와 주요 지역의 인구 및 주택 보급 현황을 통해 배경을 짚어보겠습니다. 2024년미국 센서스국(ACS) 자료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캘리포니아 전체 한인 인구: 565,921명입니다. 이 중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한인 인구는 224,630명으로 가장 큰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밸리(San Fernando Valley)의 전체 인구: 1,836,142명으로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보유 주택 수는 682,845채, 이 중 한인 인구는 약 7만 명, 한인 보유 주택은 약15,000채로 추정합니다. 산타클라리타의 경우 전체 인구: 229,175명, 전체 주택 수: 75,808채 — 한인인구는 4,075명으로 아시아계 인구의 16%를 차지하며, 한인 보유 주택은 약 900채로 추정됩니다. 결코 작은 커뮤니티가 아닙니다. 밸리에서만 15,000채, 산타클라리타에서 900채의 주택을 한인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시장에 나오는 매물 중 한인 소유 매물의 비중은 주류 커뮤니티에비해 턱없이 적습니다.

왜 유독 한인보유 주택 매물만 나오지 않는가?
이 현상의 원인은 한인 커뮤니티가 부동산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 그리고 주류 사회와는 다른 노후자산 운용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류 사회의 시니어 세대는 대체로 담백합니다. 은퇴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다운사이징을 하고, 외곽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시니어 커뮤니티, 혹은 시니어 하우스로 옮겨갑니다.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본인의 은퇴 생활의 질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필요하면 언제든 주택을 처분해 현금화합니다.
반면 한인 시니어 세대는 다릅니다. 특히 자녀와의 자산 관계에서 "내 것이 내 것, 네 것은 네 것"이라는 개인주의적 경계가 뚜렷한 주류 사회와 달리, 한인 가정은 부모 세대의 자산이 곧 자녀 세대로 이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정서가 여전히 강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늘어난 밀레니엄 세대의 수명으로 인해 잠긴(Locked) 주택 재고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65세정도 살면 감사하다고 했으나, 요즈음은 운 없으면 110세까지 산다고 합니다. 즉, 수명이 늘어난 기간만큼 전에는 65세 전후에 자산의 조정으로 주택 매각을 많이 하였으나 이제는 그 시점이 75세 전후로늘어났습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10년 치의 주택 재고를 시니어들이 쥐고 잠그고(Locked) 있다는결론이 됩니다.
두 번째는 “집을 팔고 이사 간다 해도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생각입니다. 집값이 앞으로조금이라도 더 오를 가능성이 있고 노후의 삶이 대폭 개선되지 않는다면 급하게 주택을 처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냥 기다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모기지가 완납된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이오프가 끝난 집은 보유 비용부담이 적기 때문에 굳이 시장 상황에 밀려 급하게 팔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시간이 셀러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자녀에게 물려줄 자산으로 인식합니다. 은퇴 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더라도, 집을 처분하기보다 그대로 보유하거나 자녀 명의로 전환해 계속 가지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들이 겹치면서 한인 소유 주택은 시장의 등락과 상관없이 매물로 잘 나오지 않는 "잠긴 인벤토리(locked inventory)"의 성격을 띠게 됩니다. 주류 시장이 오픈하우스 간판으로 뒤덮이고 매물 누적으로 몸살을 앓는 동안, 한인 커뮤니티만 유독 조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밸리 7만 명, 산타클라리타 4천 명. 결코 작지 않은 이 숫자 뒤에는 밸리 15,000채라는 고정자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자산이 시장에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우리 한인 특유의자산관과 세대 간 자산 승계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지금 골목마다 보이는 많은 오픈하우스 간판을 보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집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집을 팔고 있고, 왜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팔지 않고 있는가. 어쩌면 바로 그 차이가 앞으로 주택시장의 방향을 가르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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